대구로 대학을 오며 처음 마주한 풍경은 언제나 활기찼다.
발 디딜 틈 없이 젊음이 교차하는 동성로, 밤늦도록 불이 꺼지지 않는 대학로. 내가 알던 도시의
전형적인 풍경이었다.
새로운 도시에서 마주하는 낯선 에너지는 때로 압도적이었고, 나는 그 흐름 속에 자연스럽게 섞여들었다.
발 디딜 틈 없이 젊음이 교차하는 동성로, 밤늦도록 불이 꺼지지 않는 대학로. 내가 알던 도시의
전형적인 풍경이었다.
새로운 도시에서 마주하는 낯선 에너지는 때로 압도적이었고, 나는 그 흐름 속에 자연스럽게 섞여들었다.
그러나 그 번화함에서 불과 몇 걸음 떨어진 북성로 공구골목에 발을 들인 순간, 두 동네는 완전히 상반된 세계였다.
건물 사이 균열은 이미 건물의 일부로 완전히 자리잡고 있었고, 길 위를 채운 것은 행인의 발걸음이 아닌 날카로운 금속의 소음뿐이었다.
사람의 온기는 좀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각자의 가게를 묵묵히 지키는 사장님들만이 그 풍경 안에 남은 유일한 사람들이었다.
건물 사이 균열은 이미 건물의 일부로 완전히 자리잡고 있었고, 길 위를 채운 것은 행인의 발걸음이 아닌 날카로운 금속의 소음뿐이었다.
사람의 온기는 좀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각자의 가게를 묵묵히 지키는 사장님들만이 그 풍경 안에 남은 유일한 사람들이었다.
겉으로는 쇠락한 골목의 공허함처럼 보일 수도 있었지만, 내가 느낀 것은 단순한 비어있음이 아니었다.
동성로가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가공하고 덧칠하는 공간이라면, 북성로는 그 모든 가공을 거부한 채 뼈대만 남은 민낯을 드러내고 있었다.
화려한 현재를 살아가는 동성로의 소음 뒤에서, 북성로는 도시의 가장 낮은 곳을 지탱하며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켜내고 있었다.
동성로가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가공하고 덧칠하는 공간이라면, 북성로는 그 모든 가공을 거부한 채 뼈대만 남은 민낯을 드러내고 있었다.
화려한 현재를 살아가는 동성로의 소음 뒤에서, 북성로는 도시의 가장 낮은 곳을 지탱하며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켜내고 있었다.
텅 빈 보도 위로 내려앉은 적막은 공백이 아니었다. 수십 년간 쇠를 깎아온 치열한 시간들이 응축되어 만들어낸 묵직한 밀도였다. 사람이 떠난 자리에 남은 것은 버려진 공간이 아닌, 무언가를 고치고 만들어내는 노동의 본질 그 자체였다.
그 공허함은 비어 있어 쓸쓸한 것이 아니었다. 더 이상 무언가를 채워 넣을 필요가 없을 만큼 삶의 흔적으로 꽉 차 있기에 느껴지는
, 기묘하고도 단단한 충만함이었다.